수술실은 생각보다 밝았고 오픈되어 있었다. 전에 외과에서 수술받을 때는 정말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약간 어두컴컴하고 가운데 라이트만이 나를 비추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리고 그때보다 의료진의 인원수가 더 적었다. 그땐 간호사 포함해서 한 4-5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지금은 전공의로 보이는 한분과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집도의이신 교수님만이 전부. 아, 그리고 나를 보러 사복을 입고 왔던 학생. 그 학생이 수술방에 까지 들어올지는 몰랐다.
아무튼 환부를 보이기 위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의를 벗었다. 이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밖에 없는 게 환자로서 누워 있으면은 수치심이고 뭐고 없다. 그냥 어떻게든 치료받아서 낫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기 때문.
그리고 간호사분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안내해주시는대로 누워서 기다렸다. 환부 근처에 제모를 하고 소독을 하고 나니,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취주사는 언제나 아팠기 때문에, 잔뜩 긴장을 했다. 물론,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참아야 해서 참는 것도 있었고.
20초 동안 아플 거라고 하시고 처음에는 주사를 놓을 때 숫자를 세어주신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목표시간이 있으면 그때까지만 참으면 되니까. 아무튼 20초는 안되게 15초쯤 되었을까 마취가 끝났다. 마취가 될 때까지 3분 정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는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를 접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란다.
마취를 했으니 안아플거라고 했으나, 역시 현실은 달랐다. 안 아파야 하는데 뭔가 찌릿하니 안을 긋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이 정말 싸하고 공포스럽다. 한번 그 느낌을 경험하니 그때부터는 겁이 난다. 아프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끔 따끔해서 몸이 살짝 튕길 때도 있었는데 그건 뭐였을까? 마취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하려다가 잘못된 거였을까. 처음에 그 카운팅은 이제 없다. 영역을 넓혀가며 마취를 하는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에게는 정말 긴 시간이었지만 첫 수술은 20분 정도였다고 했다. 봉합을 하지 않은 채 수술방을 나간다. 병리과에 조직검사를 보내고 결과 나오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수술방에 누워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더라. 절뚝거리며 첫 수술방을 나선다.
병실에서 기다리라길래 절뚝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락이 와서 다시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내가 내힘으로 걸어서는 안되어서 휠체어를 탔다. 봉합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힘을 주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휠체어를 타니 영락없이 병자 느낌이 되더라. 게다가 첫 수술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슬슬 공포심이 더해진다.
앞서 수술 받으신분들은 한 2차 정도만 하고 봉합을 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느 카페에서 보았던 2-3시간짜리는 짧은 거였다. 나는 9시 반부터 수술하기 시작했는데,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지 않아서 2-3차례 더 제거했다. 배도 고프고 지치더라.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음성 판정이 나오고 봉합만이 남았다. 앉아서 기다릴래 올라가서 기다릴래 하길래, 안 되겠다 싶어서 올라갔다. 12시에 나오는 밥은 이미 식은 채로 자리에 놓여 있었고 살기 위해 먹었다. 그리고 4시쯤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3시 좀 넘으니 내려오라는 콜이 떨어진다. 3시부터 내려왔지만 결국 4시부터 봉합을 시작한다.
그날도 엄청 바쁜 모양이었다. 교수님은 두 탕을 뛰시고, 그 바람에 나는 봉합을 한 번에 하지 못하고 전공의분이 손으로 지혈을 하고 있었다. 식사는 하셨냐 하고 물으니 역시나 못 드셨단다. 괜히 나 때문에 수술이 길어지고 미뤄진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그랬더니, 모즈술 할 때는 언제나 이렇다고 했다. 그리고 참을만하시냐고 물어보더라. 수술하기 전에는 굉장히 이미지가 안 좋았던 분인데, 괜히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나니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마지막 봉합을 한다. 부위가 넓은 건지 꽤나 오랫동안 꿰멨는데, 돌아와서 보니 한 15cm 가량 되는 것 같다. 그전에느 고작 5cm미만의 크기 였는데 말이지. 피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해서 성인용 기저귀를 가져오라더라. 봉합이 끝나고 나니 전공의분하고 간호사 선생님하고 두분이서 기저귀를 채워주시는데 그게 참 기분이 묘하다.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너무 고맙더라. 바쁘셔서 교수님한테는 인사도 못하고 두분한테만 허리굽혀서 인사하고 나왔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회복을 위해서 병실로 돌아왔다.